[인터풋볼] 정지훈 기자= 별명이 ‘들소’에서 ‘황소’로 바뀌었다. 전북 임대, 군 입대를 제외하고 포항에서만 뛰었던 ‘들소’ 신광훈이 2017년에는 FC서울의 ‘황소’가 되어 그라운드를 누볐고, 2018년 더 높은 곳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신광훈의 별명은 들소다. 워낙 힘이 세고,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로 찬스를 만들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2017년에는 별명이 ‘황소’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포항맨’ 신광훈이 FA 자격을 얻어 서울의 검붉은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구단과 팬들은 서울이 1983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창단했다는 것에서 착안해 신광훈에게 ‘황소’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엄청난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은 기대감과 거리가 멀었다. ‘은사’ 황선홍 감독의 믿음과 함께 선발로 나섰지만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서울 역시 수비 조직력에 아쉬움을 남기면서 3백과 4백을 번갈아 사용해 신광훈도 잦은 포지션 변경을 경험했다. 여기에 3월 중순이라는 이른 시점에 부상을 당해 무려 4개월이나 공백 기간이 있었다.

절치부심. 신광훈은 서울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재활에 매진하며 그라운드로 돌아갈 날만 생각했고, 결국 2017년 7월 9일 광주전을 통해 컴백을 알렸다. 불안했던 오른쪽 풀백 자리에 신광훈이 들어가자 서울 수비도 안정감을 찾으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신광훈은 공수 모두에 기여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비록 서울이 리그 5위에 머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지만 오스마르, 양한빈, 윤일록 등과 함께 좋은 경기력을 보였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는 2018년. 데얀, 윤일록 등 주축 선수들이 떠나면서 분위기는 어수선하지만 신광훈은 더 좋은 시즌을 다짐했고, FC서울이라는 자부심을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파트1: FC서울 그리고 2017년]

기대감은 가득했다. 2016년 서울은 오른쪽 풀백 포지션에서 고민이 많았고, 고광민이 군 입대로 팀을 떠나면서 새로운 풀백이 절실했다. 이에 황선홍 감독은 포항 시절 더블 우승을 함께 했던 신광훈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결국 신광훈이 2017년 서울에 입성했다. 팬들 역시 국가대표 출신 신광훈이 영입되자 많은 기대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신광훈이 시즌 초반 장기 부상을 당하며 약 3개월 간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고, 팀도 끊임없는 부진에 시달렸다. 비록 후반기에 복귀해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컨디션이 100%가 되기 전에 시즌이 마무리됐다.

신광훈도 이점이 아쉬웠다. 시즌 막판 계속해서 몸 상태가 좋아졌지만 이미 너무 늦었고, 후반기에 좋은 모습을 보이고도 서울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2017년 서울 입단 돌아보면?

포항을 떠나 서울로 이적했다. 구단의 환경이나 지원 그리고 팬들을 보면서 K리그 최고의 빅 클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 입장에서는 이 팀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FC서울 팀 분위기는?

처음에는 약간 낯설었다. 그러나 기존에 알던 선수들이 워낙 많아 금방 친해지고 적응했다.

-포항에서 오랜 시간 활약, 서울과 다른 점은?

서울에는 클럽 하우스와 숙소가 없다. 포항에서는 숙소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서울에서는 이런 점이 없다. 아무래도 숙소가 없다 보니 선수들끼리 밥을 사먹는 경우가 많은데 운동을 하면서 내기도 하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색다른 경험이다. 프로 와서는 첫 경험인데 분위기도 자유롭고,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시즌 초반 기회를 잡다가 부상을 당했는데

팬들이 기대를 많이 해주셨고, 성원도 해주셨는데 제가 기대에 못 미쳤다. 만회를 했어야 했는데 부상 때문에 3개월 정도를 쉬었다. 한 시즌을 했다기보다 반 시즌을 소화한 느낌이다. 그 반 시즌도 나름 노력은 했지만 공백기도 있었고, 아쉬움이 남는다. 부상에서 회복한 후 몸이 올라왔을 때 시즌이 끝났다. 팬들에게 많이 미안한 시즌이다.

-부상 복귀 후 후반기 맹활약

후반기 때는 경기에 많이 출전했고, 기회를 받았다. 팬 분들께서도 인스타그램이나 경기장에서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조금이나 짐을 덜었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팬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경기력이 좋아졌는데 계기가 있다면?

아무래도 감독님께서 공을 잡았을 때 백패스보다는 전진 패스를 많이 하라고 주문하신다. 수비는 안정적인 것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전반기에는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안정적으로 플레이를 했던 것 같다. 볼 점유율은 높았지만 상대 위험 지역에서 점유율은 많이 떨어졌다. 후반기에는 공격적으로 플레이를 하려고 했고, 분위기를 타려고 노력했다. 연승이 많이 없는 것은 아쉽다.

-어떤 선수와 호흡이 잘 맞는가?

주세종, 이명주...이야기 하다 보니 다 떠난 선수들이다. 아쉽다. 이상호나 고요한과도 잘 맞고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던 선수들이다. (데얀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데얀도 좋았는데...더 이상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서울 입장에서는 가장 아쉬웠던 시즌. 돌아보면?

뭔가 많이 꼬였던 시즌이다. 연승 탈 분위기에 타지 못했고, 이길 경기에 승리하지 못했다. 작년에 보니까 저도 그렇고, 대성이형, 코바, 이명주 등 새로 합류한 선수들이 부상을 당해 분위기를 바꾸지 못했다. 이상할 정도로 분위기를 타지 못했다.

[파트2: 포항 그리그 황선홍]

신광훈과 포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06년 포항에 입단해 2016년까지 활약하며 두 번의 K리그 우승과 두 번의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13년에는 영광스러운 더블 우승을 달성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 중심에는 황선홍 감독이 있다. 황선홍 감독은 외국인 선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신광훈, 이명주, 김승대, 황진선 등 국내 선수들을 중심으로 최고의 성적을 만들었고, ‘스틸타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K리그를 평정했다. 결국 황선홍 감독은 서울에 와서 최우선으로 영입한 선수도 ‘애제자’ 신광훈이었다.

그러나 2017년은 좋지 않았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와 FA컵에서 조기 탈락했고, 리그에서도 5위에 머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지 못했다. 여기에 이적 시장에서 데얀, 윤일록, 김치우 등 주축 선수들이 떠나면서 팬들의 비난은 거셌다. 이런 상황에서 황선홍 감독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신광훈도 위기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은 여전했고, 황선홍 감독과 함께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반전을 약속했다.

-신광훈을 이야기할 때 포항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팀인가?

학창 시절을 포항에서 보냈고, 축구도 포항에서 시작했다. 프로 입단도 마찬가지다. 전북으로 임대 2년을 간 것을 제외하고는 포항에 있었다. 축구 인생 절반 이상을 포항에서 보냈다. 제가 떠나갈 당시에는 이미 포항 팬 분들이 제가 떠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운함을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았다. 선수 입장에서는 좀 더 서운해 하실 줄 알았는데...(웃음) 결국에는 포항을 떠나 서울에 왔다. 그래도 서울 팬들이 많이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 이제 제 팀은 서울이다. 경기장에서 보답하고 싶다.

-황선홍 감독의 존재

서울이라는 팀 자체가 워낙 좋은 팀이다. 그래도 황선홍 감독님이 서울에 계셨기 때문에 더 오고 싶었다. 다른 곳에서도 오퍼가 있었지만 고민하지 않고, 서울을 선택했다. 당시 제가 군에서 제대를 한 상황이었는데 황선홍 감독님이 “짬밥은 빠졌냐”며 편안하게 말씀해주셨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감독님은 포항에 있을 때부터 선수들에게 강요를 하지 않는다. 포항에 있을 때도 1년 더 선수를 하고 군대를 갈 수도 있었다. 감독님께서 만류하지 않으시고 쿨하게 보내주셨다. 서울에서도 강요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포항의 황선홍 감독과 서울의 황선홍 감독의 차이

나이가 더 많아 지셨다. 농담이다. 전술적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포항에 있을 때는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을 세웠지만 서울에는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다. 오스마르라는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기 때문에 좀 더 공격적인 것을 추구하신다. 축구 철학은 변화가 없다.

-황선홍 감독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자신의 명성에 흠집내지말라고 했다는 루머까지 퍼지고 있다. 오래 황선홍 감독을 지켜본 선수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저는 포항에서 계속 경기를 했고, 라커룸에도 있었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런 적이 없었다. 포항 시절에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지도자는 아니다. 예를 들어 전반전에 최악의 경기를 하고도 특별한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호통도 치시지 않는다. 항상 후반이 남았으니 선수들을 독려하는 말씀을 해주시고, 자신감을 심어주신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욕을 먹어야하는 상황인데도 호통보다는 격려를 해주신다. 물론 혼을 내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적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유를 많이 주시는 편이다.

-훈련을 할 때는 어떤 스타일인가?

정확하게 하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훈련 때도 열정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신다. 건방진 태도나 지나친 자만심을 보이는 선수들에게는 따끔하게 혼을 내신다. 열정적이고, 헌신하는 선수를 좋아하신다. 이런 이유로 선수들이 모두 열심히 하고,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 같다. 연습 때도 100% 집중을 원하신다.

-황선홍 감독이 외국인 선수들과 잘 맞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일단 포항 시절에는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서울만큼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없었다. 자연스레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줄었고, 포항에는 유스 때부터 올라온 황진성, 이명주 등이 있었다. 외국인 선수들보다 더 나은 선수들이었고, 개인 기술이 좋았다. 이런 이유로 외국인 선수들 위주가 아닌 국내 선수들 위주로 활용을 했다. 바깥에서 봤을 때는 외국인 선수들을 잘 안 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데얀도 마찬가지다. 바깥에서 봤을 때는 불화설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외국인 선수가 있다면 안 쓸 이유가 없고,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2018년에는 외국인 선수들을 비롯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변해야 한다.

-신광훈에게 황선홍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

저의 잠재력을 한 단계 더 이끌어 내준 지도자다. 25세 때 처음 만났다. 축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시점이다. 포항과 전북에서 배운 것이 달랐다. 그 시절에 감독님이 저를 잘 잡아주셨다. 감사하다. 축구라는 것이 정으로만 갈수는 없다. 레전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감독님이 필요한 선수가 돼야 같이 갈 수 있다. 저 역시도 감독님에게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 노력하겠다. 감독님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저부터 더 열심히 뛰겠다.

[파트3: 풀백 예찬론]

신광훈은 축구 선수를 풀백으로 시작했다. 잠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풀백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최근 현대 축구에서는 풀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고, 몸값도 과거와 달리 엄청나다. 이에 풀백으로만 뛴 신광훈에게 풀백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졌고, 신광훈의 풀백 예찬론을 들어봤다.

-어린 시절 ‘풀백’ 신광훈은?

풀백 포지션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 때는 미드필더로도 활약했고,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사실 포항으로 갈 때도 중앙 미드필더로 뽑혔고, 풀백을 겸했다. 워낙 포항에 좋은 미드필더가 많아서 박태하 코치님께서 포지션 변경을 요구하셨고, 저도 풀백이 편했다. 결국 프로 시작을 풀백으로 했다.

-현대 축구에서 풀백의 중요성이 커진 것 같다. 맨시티만 보더라도 새로운 풀백과 함께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현대 축구에서 풀백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팀들이 풀백으로 공이 향했을 때 압박을 시도한다. 만약 상대방 풀백이 빌드업이 안 된다면 볼을 끊어서 역습을 시도할 수 있다. 풀백은 공격의 시발점이자, 역습의 시작점이다. 풀백에서 미드필더로 좋은 볼을 뿌려줘야 공격을 시작할 수 있다. 풀백의 패스 선택에 따라 플레이의 질이 달라진다.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풀백의 몸값도 높아지고, 희귀해졌다. 사실 옛날에는 축구를 잘 못했던 선수들이 풀백을 봤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풀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비와 공격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옛날에는 수비만 잘하면 됐는데 이제 그런 풀백들은 반쪽짜리 선수라 불린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해야 한다.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하다.

-공격력은 좋으나, 수비력이 좋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다. 어떤 풀백이 되고 싶은가?

최근 맨시티 경기를 많이 본다. 윙어들이 중앙으로 좁히면서 풀백들이 전진해 찬스를 만드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풀백들이 어쩌면 빌드업을 주도하고, 다양한 역할을 한다. 저 역시도 한 가지만 잘하는 풀백이 아니라 팀 전술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싶다. 공격과 수비 모두를 잘하고 싶다.

-롤 모델이 있다면?

원래는 필립 람을 좋아했다. 오버래핑 타이밍, 기술, 수비력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선수다. 패스의 질은 말한 것도 없다. 람은 풀백의 교과서다. 말도 안 되는 선수다. 맨시티에서는 카일 워커를 좋아 한다. 폭발적인 오버래핑이 줄어들었지만 팀 기여도는 더 높아졌다. 공수 밸런스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신광훈이 말하는 ‘풀백 예찬론’

수비와 공격을 모두 다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제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상대방 윙어가 저를 수비하게 만들 수 있다. 공격 포인트도 만들 수 있고, 수비 기여도도 필요하다. 정말 매력적인 포지션이다. 다니 알베스를 보면 상대방 윙어가 맨 마킹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감독님과 가까운 것도 매력이다. 전반에 벤치와 가까우면 거의 감독님이 조정을 하신다. 전술이 바뀌면 보통 풀백에게 설명을 한다. 어렸을 때는 조금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에 반대로 가면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팬들과 가까운 것도 좋다.

-풀백으로 뛰면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가 포항에 있을 때 최용수 감독님이 포항의 약점은 신광훈의 왼발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전혀 인연도 없을 때다. 경기를 하면서 서울 벤치로 공이 갔고, 최용수 감독님이 발로 공을 주셨다. 이때 제가 왼발로 공을 잡았다. 보통은 오른발로 잡는데...최용수 감독님에게 왼발도 잘 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는데 곧바로 감독님께서 비속어를 쓰셨다.(웃음) 경기 후 트위터를 통해 “난 2002년 월드컵 미국전에서 최용수 감독님의 왼발 슛을 기억한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최용수 감독님도 저도 웃었던 기억이 있다.

[파트4: 인간 신광훈 그리고 2018년]

신광훈과 서울 모두 2018년이 매우 중요하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하면서 서울은 대대적인 리빌딩을 선언했다. ‘레전드’ 데얀이 숙명의 라이벌 수원 삼성으로 이적했고, 윤일록, 김치우 등도 팀을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팬들은 구단의 행보에 강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고, 덩달아 황선홍 감독에 대한 비난도 커지고 있다.

 

반전이 필요하다. 신광훈 역시 아쉬운 2017년을 보냈기에 더 나은 2018년을 약속했고, 포항에서 경험했던 더블 우승을 서울에서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리고 신광훈은 ‘인간 신광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전했다.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을 자주 한다. 인간 신광훈은?

평상시에는 아이들이랑 집에서 자주 놀아주고,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래도 딸이 생기니깐 ‘딸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첫 째가 딸이고, 3월에 아들이 태어난다. 이제는 아들 바보가 될 것 같다. 축구를 한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시킬 것이다.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료?

주영이형과 친하게 지낸다. 지금은 없지만 찬호형과도 밥을 자주 먹었다. 명주나 세종이와는 볼링도 치면서 시간을 보낸다. 석현이와 원균이와는 개인 훈련도 같이 한다. 아무래도 합숙이 없다보니 선수들과 시간을 더 많이 갖는다. 합숙할 때는 밥을 먹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데 서울에서는 다르다.

-들소와 리틀 강철, 별명은 마음에 드는가?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 코치님께서 들소라는 별명을 지어주셨다. 이후 포항에서도 들소라 불렸다. 리틀 강철은 주영이형이 올림픽 대표 시절 강철 코치님을 닮았다고 그렇게 불렀다. 번호도 강철 코치님과 같은 번호를 사용했고, 키도 비슷했다. 닮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웃음) 주영이형이 많이 놀렸다. 올림픽 때라 기사도 많이 나왔고, 계속 그렇게 불리고 있는 것 같다. 들소라는 별명이 제일 마음에 든다. 강철 코치님과는 포항과 베이징 올림픽에서 함께 했고, 포지션도 같다. 슬럼프일 때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큰 힘이 됐다.

-무뚝뚝한 경상도의 이미지가 강하다. 집에서는?

아내와는 친구처럼 잘 지낸다. (아내에게 잘 해주는가?)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아내는 성에 안차는 것 같다.

-국가대표에 대한 꿈

국가대표 경력이 단절된 것이 사실이다. 제가 가능성이 아예 없을 때도 대표팀에 대한 꿈은 가지고 있다. 그래야 동기부여가 된다. 나이도 들었지만 대표팀에 대한 꿈은 가지고 축구를 하고 있고, 준비하고 있다. 대표팀 경기를 항상 보고, 기사도 찾아본다. 그동안 안됐던 것은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팀 동료 고요한이 대표팀에서 활약한다) 요한이가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요한이가 대표팀에서는 풀백으로 뛰고 있다. 제 포지션이기 때문에 사실 달가운 일은 아니다. 신태용 감독님의 스타일이 있다.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고, 극복해야 한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대표팀이든 소속팀에서든 선수가 한 번 잘 못하면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8을 잘하고, 2를 못해도 못한 것만 집중되는 것 같다. 특히 풀백은 더 그렇다. 어느 선수가 대표팀에 가더라도 믿어줬으면 좋겠다. 자신감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들도 경기 끝나고 기사를 통해 여론을 접한다. 선수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가끔은 비난들이 과한 것 같기도 한다.

-신광훈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최강희 감독님이 말씀하셨는데 30대 중반이 되도 전성기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안정환 선배님도 은퇴할 때쯤 축구가 보이셨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회는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포항에서 더블 우승할 때가 좋았지만 서울에서도 더 좋은 시기를 맞이하고 싶다. 제가 노력해야 한다.

-데얀과 작별, 서울의 리빌딩

태휘형, 현이형, 대성이형, 주영이형 정도를 제외하고는 상호나 제가 고참이 됐다. 어린 선수들이 많은 것은 팀에 활력이 된다. 고참 선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간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그리움이 있을 것이고,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비난도 있는데 이런 것을 뒤집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경기력으로 뒤집어야 한다. 성적으로 말해야 한다. 나간 선수들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많은데 지금 들어온 선수들에 대한 환영의 목소리가 더 나왔으면 좋겠다. 새로운 선수들이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경기력으로 보여드리겠다.

-2018시즌 목표

단순해졌다. 우리는 트로피 두 개를 들어 올리고 싶다. 포항에서 더블 우승을 했는데 서울에서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개인적인 목표는 작년에 부상 때문에 많이 못나왔는데 많은 경기에 나와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신광훈에게 서울이란?

현재 저의 집이다. 제가 헌신해야할 곳이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서울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헌신하고 싶다. 서울은 나의 집이다. 이곳에서 은퇴를 하고 싶다.

인터뷰=정지훈 기자

사진=FC서울, 윤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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