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와 같은 차두리의 대표팀 인생을 돌아보니, 그는 항상 한국축구의 정점과 함께 했다.

차두리가 76번째 A매치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그는 3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한국과 뉴질랜드의 평가전에서 마지막 은퇴경기를 갖는다. 차두리는 박지성, 이영표 이후 가장 아름답게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는 선수가 됐다.

그러나 그의 13년간의 대표팀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1년 11월 8일 세네갈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차두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발탁됐다. ‘차붐의 아들’로만 알려진 그는 월드컵에서 교체멤버로 활약하며 빠른 스피드와 강한 체력을 과시했다. 특히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홍명보와 교체된 차두리는,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을 시도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월드컵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한 차두리에게 첫 번째 위기가 왔다. 레버쿠젠과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등을 거쳤지만 자리를 못 잡았고,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활약하는 독일에서 열린 2006 월드컵에 선발되지 못하며, 아버지와 중계 해설로 아쉬움을 달랬다.

다시 기회가 찾아 왔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차두리를 낙점했다. 박지성, 이영표, 박주영 등 당시 최고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춘 차두리는 한국의 첫 원정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당시 엄청난 활약으로 ‘차미네이터’라는 별명과 함께 신드롬을 만들기도 했다.

월드컵에서 활약으로 셀틱으로 이적한 차두리는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대표팀에서도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3위를 기록하는데 기여했지만, 또 거기까지였다. 아시안컵 후 대표팀과 멀어졌고, 홍명보 감독이 이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부상으로 발탁되지 못했다.

그리고 2015년. 차두리는 AFC 호주 아시안컵에서 팀의 맏형으로 참여했다. 그는 나이를 잊은 활동량으로 한국이 32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차두리는 국민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대표팀 인생이었다. 2006 독일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발탁되지 못한 실패를 경험했지만, 돌아보니 실패가 아니었다. 그가 참여한 메이저 대회에는 꼭 한국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월드컵 4강’, ‘월드컵 첫 원정 16강’, ‘32년만의 아시안컵 결승진출’ 등 한국 축구의 역사엔 그가 항상 함께 했다.

‘한국축구의 파랑새’로 기억될 차두리. 국가대표 유니폼은 반납하지만, 한국 축구의 역사엔 항상 그의 이름이 기억될 것이다.

[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soccersjw@interfoot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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