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풋볼] 오종헌 기자 = 토트넘 훗스퍼의 '주포' 해리 케인이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공격수로 진화했다.
# 혜성처럼 등장한 해리 케인, 잉글랜드에 ‘허리케인’을 몰고오다
케인은 토트넘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으로 2013-14시즌부터 서서히 1군 출전 기회를 부여 받기 시작했다. 당시 토트넘은 로베르토 솔다도,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등이 주로 경기에 나섰으며 케인은 이들의 백업 역할을 맡았다. 신예 선수에 불과했던 케인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10경기(선발6, 교체4)에서 3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4-15시즌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케인은 해당 시즌 EPL 34경기 21골 4도움으로 세르히오 아구에로(26골, 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리그 득점 2위에 올랐다. 이에 PFA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또한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 스트라이커에 잉글랜드 전역이 들썩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케인에게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케인의 발 끝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날카로워졌다. 2015-16시즌에는 EPL 38경기에 모두 출전해 25골 1도움을 터뜨리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로써 케인은 잉글랜드 국적 선수가 16년 만에 EPL 득점왕에 올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듬해 부상 여파에도 불구하고 EPL 30경기에서 29골 7도움을 기록하며 2시즌 연속 EPL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명실상부 잉글랜드 최고의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케인은 2017-18시즌에도 가공할 득점력을 보여주며 EPL 37경기에서 30골 2도움을 올렸다. 하지만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32골)에 간발의 차로 밀려 3시즌 연속 득점왕에는 실패했다. 케인은 지난 2시즌 역시 꾸준하게 리그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하며 토트넘의 ‘주포’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레 새로운 역사와 가까워졌다. 케인은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J조 3차전에서 전반 이른 시간 군더더기 없는 헤더로 팀의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는 케인이 토트넘 소속으로 기록한 200번째 득점이었다. 현재 통산 203골. 현재 토트넘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는 266골을 기록한 지미 그리브스다. 케인의 나이를 고려하면 충분히 경신 가능한 격차다.
# 英 간판 골잡이 케인, 올 시즌 어시스트 능력까지 장착했다
토트넘과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골잡이로 평가 받는 케인이 올 시즌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작은 EPL 2라운드 사우샘프턴 원정이었다. 이날 케인은 손흥민의 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며 단 한 경기에서 4도움을 적립했다. 이후에도 케인은 꾸준히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현재 모든 대회를 통틀어 12도움을 올리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늘 리그가 시작되기 전에 득점왕 후보 1순위로 거론됐던 케인은 현재 다른 기록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바로 리그 도움 순위다. 케인은 EPL에서 10개의 어시스트를 올리며 케빈 더 브라위너(7도움, 맨체스터 시티)를 제치고 1위에 올라있다. 지금 같은 페이스라면 충분히 20도움 이상도 가능하다. EPL 기준 단일 시즌 최다 어시스트 기록은 티에리 앙리와 케빈 더 브라위너의 20도움이다.
단순히 어시스트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올 시즌 케인은 매 경기 후방 깊숙한 곳까지 내려와 공격 전개의 핵심 역할을 맡는다. 이런 플레이는 히트맵으로 봤을 때 더욱 돋보였다. 9월 18일 로코모티브 플로브디브와 경기까지만 해도 케인은 주로 전방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사우샘프턴전을 시작으로 플레이 스타일이 눈에 띄게 변했다. 약팀을 상대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리버풀과 경기에서도 상당히 흡사한 히트맵을 나타냈다. 주로 활동하는 반경은 센터서클 주변이었으며 공격수임에도 보통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센터백이 커버하는 범위까지 발자취를 남겼다.

넓은 활동 반경과 공격 전개, 뛰어난 어시스트 능력까지. 전형적인 '10번' 역할이다. 케인은 토트넘에서 본격적인 출전 기회를 받기 시작할 때 등번호 18번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2015-16시즌 10번으로 변경했다. 당초 10번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는 플레이메이커 선수들의 상징적인 번호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 메수트 외질(아스널)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9번' 공격수에 가까웠던 케인이 최근 자신의 등번호 10번에 어울리는 플레이를 하고 있다. 물론 케인의 득점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케인은 올 시즌 리그에서 14경기 9골을 기록 중이다. 공격 포인트만 무려 19개(9골 10도움)을 쌓았다. 약팀을 상대로 몰아친 것도 아니다. 득점과 어시스트를 꾸준히 올렸으며 공격수로서 해결사 역할을 해줘야 할 때는 과감한 슈팅으로 골문을 열었다.
자연스레 케인을 향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레스터 시티의 브렌든 로저스 감독은 “올 시즌 케인은 깊숙한 곳까지 내려와서 플레이 하고 있다. 리오넬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비슷한 움직임을 가져간다. 다른 역할이 제한된 것도 아니다. 그저 케인은 원래 모습에서 새로운 것이 추가된 것이다. 그는 여전히 환상적인 골잡이다.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도 득점을 터뜨릴 능력을 갖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올 시즌 케인은 모든 대회를 통틀어 22경기 16골 13도움(유로파리그 예선 포함)을 기록 중이다. 공격포인트만 29개를 쌓았다. 지난 시즌 34경기에 출전해 26개의 공격 포인트(24골 2도움)를 올렸던 케인은 반 시즌 만에 그 기록을 넘어서게 됐다. 골 결정력도 훨씬 날카로워졌지만 어시스트 능력을 완벽하게 장착했다. 올 시즌 케인은 변화가 아닌 진화를 이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