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축구대표팀 사령탑 요아힘 뢰브 감독이 긴 여정을 마치려 한다.
박수받으며 떠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지난 15년간 독일의 흥망성쇠 중심에 있었던 뢰브 감독이 계약 종료 시기보다 2년 앞서 자진 퇴임 의사를 밝혔다.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만큼 부담감도 컸을 뢰브는 모든 걸 내려놓고 자유인으로 돌아간다. 이젠 마지막 미션만 남았다. 바로 유로 2020.
#거침없이 정상까지 올라갔다
뢰브 감독은 독일의 유로 2004 부진 덕분에(?) 지금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유로 2004 당시 독일의 루디 푈러 감독은 조별리그 탈락으로 사직서를 냈다. 곧바로 부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친한 후배 뢰브에게 수석코치직을 제안했다. 뢰브는 클린스만 아래서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 2006 월드컵 무대를 누볐다.
단 2년 만에 정식 감독으로 올라갔다. 클린스만 감독이 2006 독일 월드컵 직후 대표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뢰브는 첫 메이저대회인 유로 2008에서 거침없이 승승장구해 결승까지 올랐다. 비록 결승에서 스페인에 0-1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첫 대회치고는 달콤한 성과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토마스 뮐러·메수트 외질·토니 크로스·마누엘 노이어 등 신예를 대거 기용해 3위로 대회를 마쳤다. 2년 뒤 열린 유로 2012 예선에서는 10전 전승으로 본선에 올랐다. 당차게 우승을 노렸으나 4강에서 이탈리아에 1-2로 패했다.
뢰브 감독의 지도력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만개했다. 포르투갈전 4-0 완승에 이어 4강 브라질전 7-1 대승으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선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독일에 역대 4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또한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2군 멤버로 우승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월드컵과 컨페드컵을 모두 품에 안은 뢰브다.
#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누가 알았을까.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의 우승을 예측한 축구인이 많았다. 디펜딩 챔피언이니까, FIFA 랭킹 1위니까,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2군 멤버로 우승했으니까. 모든 이유는 타당했다. 죽음의 조(독일·대한민국·스웨덴·멕시코) 걱정은 독일을 향한 걱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웬걸? 독일은 1차전에서 멕시코에 0-1로 져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2차전에서는 스웨덴을 2-1로 겨우 이겼다. 3차전에서 한국을 반드시 이겨야 16강에 갈 수 있었다. 독일의 맹공격은 번번이 조현우·김영권의 육탄방어에 막혔다. 오히려 종료 직전에 2골을 얻어맞고 0-2로 쓰러졌다. 독일의 월드컵 역사상 첫 조별 라운드 탈락은 전 세계에 속보로 퍼졌다.
후폭풍은 예상보다 더욱 거셌다. 월드컵 직후 No.10 외질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인종차별 및 정치적 비판을 참지 못해서다. 외질 외에도 대표팀을 떠난 이들이 있다. 뢰브 감독은 뮐러·보아텡·훔멜스 등 베테랑들에게 부진 책임을 묻고 대표팀에서 내쫓았다. 무리하게 세대교체를 감행한 독일은 유로 예선에서 네덜란드에 2-4로 크게 졌고, 네이션스리그에서는 스페인에 0-6으로 짓밟혔다. 십수 년간 전폭적인 신뢰를 받던 뢰브 감독은 순식간에 경질 대상으로 전락했다.
# 해피엔딩 or 새드엔딩?
결국 뢰브 감독은 유로 2020을 끝으로 독일 사령탑에서 물러나겠다고 지난 3월 밝혔다. 현재까지 14년 10개월째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세계 무대를 누빈 뢰브는 오는 7월 유로 폐막과 동시에 자유인이 된다. 떠나는 이도, 보내는 이도, 지켜보는 이도 시원섭섭한 작별이다.
뢰브 감독의 마지막 여정은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독일은 조별라운드에서 ‘역대급’ 죽음의 조에 걸렸다. 독일이 속한 F조에는 프랑스, 포르투갈, 헝가리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앞서 3연속 유로 4강에 들었던 뢰브는 월드컵·컨페더레이션스컵에 이어 유로에서도 챔피언에 등극할 수 있을까.
글=이현호 기자
사진=게티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