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세계랭킹은 무의미했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27일 숙적 일본 2-1로 제압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태극 낭자들의 승리를 향한 열망과 투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2연패를 당할 때 까지만 해도 ‘아직 아시아에서 조차 명함을 못 내미는 구나’, ‘투자를 안 하니까 발전이 있겠냐’는 등 이런 결과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허나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일본전에서 이런 여론과 언론의 질타를 비웃기라도 하듯 기적 같은 드라마를 썼다.
사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여자부(한국, 중국, 일본, 북한) 4팀의 면면을 살펴보면 진국이었다. 청소년 대표 시절 세계, 현재 일본 무대를 휩쓸고 있는 지소연(고배 아이낙)이 한국 선봉에 섰다. 세계 랭킹 3위이자 2011년 FIFA 여자월드컵 우승국인 일본도 오기미 유키(첼시)를 비롯해 최정예로 임했다. 2005년 이후 8년 만에 대회에 참가한 북한도 과거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하던 주축 선수들이 가세해 탄탄한 전력을 과시했다. 중국도 과거 명성을 되찾기 위해 최상의의 전력을 꾸렸다.
그럼에도 여자부 경기는 남자부의 관심에 밀려 ‘쩌리’ 취급을 당했다. 북한과의 1차전 6,530명, 중국전 2,580명, 일본전은 2,370명이 입장했다. 냉정하게 말해 여자축구 치고 많이 입장했다. 하지만 동아시안컵은 나름 국제대회고, 홈에서 열렸는데도 텅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러니 여자 선수들이 홈 이점을 안고, 힘을 받을 수 있었을까. 혹 매번 텅 빈 경기장에서 뛰다 보니 ‘오늘은 왜 이렇게 많지’라며 의문을 가졌을지 모르겠다. 개최국으로서 창피하고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이다.
물론 대회 운영상 남자부 경기에 앞서 열리거나 하루 전날 편성돼 관심을 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평일 경기의 경우 작장인들이 퇴근하기 전에 열렸고, 방학 이라고는 하나 여자축구의 대한 10, 20대 초반 학생들이 여자축구에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한국에서 여자축구의 실태를 보면 취약, 아니 끔찍한 게 사실이다. WK리그가 현재 7팀이고, 어디서 열리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관계자 및 언론은 국내리그 발전이 대표팀의 튼튼한 뿌리를 이어진다며 거창한 말만 내뱉고 있다. 당장 오늘부터 강원 화천, 경기 이천, 충북 보은 세 곳에서 WK리그가 열리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오늘은 평소보다 관중이 더 들어찰 수 있다. 하지만 이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이다.
여자축구의 취약한 현실은 대한축구협회의 대우에서도 나타났다. 같은 태극마크를 달고도 파주 NFC에서 생활하지 못한 채 호텔을 전전했다. 홍명보 감독은 파주를 떠나는 여자 선수들을 향해 “미안하다. 우리 때문에 가는 것”이냐며 미안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몇몇 선수들이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고, 윤덕여 감독이 내색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섭섭했을지 상상이 간다. 이를 보면서 아직도 우리나라 여자축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느꼈다.
지금도 언론에서 보도되는 뉴스를 보라. 어제(28일) 열렸던 남자부 한일전 패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자 선수들이 일본에 승리한지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잊혀졌다.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이 헤내지 못한 일을 해냈지만 또 변두리로 내몰렸다.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여자축구가 처한 상황은 마치 올림픽 때 비인기 종목에서 메달리스트가 나온 격이다. 잠깐 반짝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다.
WK리그 박진감 없다는 건 옛말이다. 남자들 못잖은 전술적 소화력, 힘, 기술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스타가 없다는 것도 억지다. 주장이자 '미녀 진공청소기' 심서연(고양대교), 캐논포로 만리장성의 골망을 흔든 ‘류현진’ 김나래(수원FMC), 새로운 얼짱으로 떠오른 ‘여축계의 김태희’ 이민아(현대제철)도 WK리그가 배출한 스타다.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는 여자축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충분히 경쟁력 있고, 국내 리그의 중요성을 또 한번 깨달았다.
그녀들의 노력과 열정이 헛되지 않길 바라며 CU@WK리그는 어떤가.
이현민 기자
사진= 스포탈코리아, 차영민 기자(대한민국 여자축구 팬카페, cafe.naver.com/wmfootba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