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수문장' 정성룡(28, 수원 삼성)이 무너지면서 홍명보호 골키퍼 자리에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다.
한국은 지난 15일 스위스(2-1승), 19일 러시아(1-2패)와의 평가전을 치렀다. 올해 마지막 A매치로 대표팀의 현재를 진단하고, 홍명보호 4개월을 결산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동안 홍명보 감독의 속을 썩였던 특정 포지션도 어느 정도 대안을 찾았다. 헌데 가장 믿었고, 안정적이던 골키퍼에 문제가 발생했다. 붙박이였던 정성룡이 경기력 난조에 심리적 부담까지 겹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대체자로 김승규(23, 울산 현대)가 있지만 그저 ‘대안’일뿐 월드컵을 7개월여 앞둔 시점에 역사상 가장 큰 위기라 봐도 무방하다.
과거부터 한국은 김병지-이운재가 있어 골문 만큼은 든든했다. 김병지(1998 프랑스 월드컵), 이운재(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정성룡이 골문을 지킨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괜찮았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정성룡에 대한 여론이 이토록 들끓지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 정성룡은 여느 때와 달랐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물론 대표팀에서도 특유의 안정감을 사라진 지 오래다.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 K리그 클래식에서 그저 그런 골키퍼
정성룡은 올 시즌 31경기에 출전해 37골을 내줬다. 경기당 한 골 이상을 허용한 셈. 수원의 수비 조직력이 온전치 못한 데다 순위가 5위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다.
반면 대표팀에서 경쟁자로 떠오른 김승규(울산)는 29경기에서 23골 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써드 골키퍼인 이범영(부산)도 32실점으로 정성룡보다 실점율이 낮다.
위 표에서 붉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정성룡보다 경기당 실점율이 낮은 선수다. 무려 6명의 골키퍼가 정성룡보다 골을 적게 허용했다. 눈 여겨볼 점은 불혹의 나이를 넘긴 최은성(전북)과 ‘전설’ 김병지(전남)의 활약이다. 전북은 클래식 최고 공격을 자랑하지만 43골이나 내줬을 정도로 수비는 취약하다. 그럼에도 전북이 상위권에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최은성의 활약이다. 27경기에서 26실점으로 경기당 0.96의 수치다. 김병지는 올 시즌 전남에서 전 경기 출전했다. 많은 경기에 나서다 보니 35경기에서 42골을 허용했다. 특히 최은성과 김병지는 후방에서 수비를 이끄는 콜플레이와 리더십, 가장 중요한 ‘슈퍼세이브’로 골문을 사수하고 있다.
▲ 압도적 A매치 출전, 아직까지는 괜찮다?
현재 K리그에서 뛰고 있는 골키퍼 중 전현직 대표팀 골키퍼는 모두 6명이다. 이 중 정성룡은 김병지의 뒤를 이어 가장 많은 57회 A매치에 나섰다. 이제 5경기만 더 뛰면 김병지 기록과 타이를 이룬다. 한때 정성룡은 은퇴한 이운재(132경기 114실점)의 후계자로 지목될 만큼 묵직함이 돋보였다. 그러나 최근 경기력은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다. 누구나 경기 중 실수를 범할 수 있지만 실점이 모두 자신의 잘못인 것 마냥 의기소침해 하는 모습, 소극적 플레이가 눈에 보인다.
위 표를 통해 주목할 점은 김용대다. 김용대는 과거 김병지-이운재의 활약에 눌려 빛을 못 본 선수 중 하나다. 김용대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올림픽 대표를 거치며 주목 받았다. 2002 한일 월드컵 최종엔트리 입성을 앞두고 고배를 마셨으나 이후 K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이제 경험과 연륜까지 쌓여 플레이는 한층 무르익었다.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선방쇼를 펼치며 서울에 준우승을 안긴 주인공이다. A매치 경험이 정성룡에 비해 1/3 수준이나 현 컨디션이라면 대표팀 재입성도 충분하다.
▲ 1월 전지훈련 전에는 칼을 빼 들어야
내년 1월, 해외파들은 리그 일정이 있어 대표팀 소집이 힘들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A매치도 없어 국내파들로 3주간 전지훈련(미국, 브라질)을 떠나야 한다. K리그는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사실상 스위스, 러시아전에서 옥석 가리기는 어느 정도 끝난 것으로 보인다.
홍명보 감독은 정성룡에게 여론을 불식시키고,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러시아전에 투입했으나 더 큰 상처만 남겼다. 팬들과 언론, 축구 관계자들까지 정성룡의 활약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제 더 이상 지체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A매치 2회 출전에 불과한 김승규와 아직 A대표팀 데뷔전도 못 치른 이범영, 둘을 데리고 브라질로 가기에 너무 극단적 선택이다. 7개월이라면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작은 변화는 줄 수 있다. 올 한해 K리그만 보더라도 경쟁력 있는 골키퍼가 많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 선발 1순위는 소속팀에서 활약과 ‘팀’정신이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누구보다 후방에서 동료들의 움직임, 경기 흐름을 잘 읽는다. 그리고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잘 안다. K리그에서 뛰어난 몇몇 골키퍼들을 보면 이미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 정성룡의 변화를 확실히 이끌어 낼 수 없다면 과감하게 칼을 빼내 드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이현민 기자
사진=스포탈코리아
